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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43

원양어선 1인실 실제 모습 원양어선 타면 힘들지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 한 번쯤은 모두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도 궁금했던 원양어선의 1인실 실제 모습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원양어선 선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생활시설은 나름 좋은 편입니다. 냉장고는 세계맥주로 가득 채웠지만 문제는 리필이 불가능 하다는 것... 다음은 48인치?? FULL HD 벽걸이 TV 가끔 한 잔 하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습니다. 소파는 언제나 창고처럼 사용중 입니다. 탁송품이 오면, 산처럼 쌓아두고 골라 먹는데 지금은 텅 비어 있네요... 다음은 공기청정기!! 태평양 맑은 바다에서 약간의 필요성에 대한 의심이 들긴 하지만 필터를 교체할 때 보면 의심이 싹 사라집니다. 다음은 책상!! 책 볼 시간은 없지만 책이 많은 이유가 늘 궁금합니다. 책상 한.. 2022. 7. 8.
인간의 실수 레전드 10위 살면서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가끔 치명적인 실수들이 나오곤 합니다. 오늘은 인간의 실수 레전드 10위를 준비하였습니다. 10위 데카음원사는 비틀즈와 계약하기를 거부했다. 왜냐하면 앨범이 잘 안 팔릴 것 같아서이다. 9위 나사는 화성궤도 탐사선을 잃어버렸는데, 팀의 반(외국인)은 미터 단위를 사용하고, 다른 반(미국인)은 인치를 사용해서이다. 8위 조지벨 exite ceo는 구글이 1999년에 750,000달러 우리 돈으로 약 7억 5천만 원에 구글 인수를 제의했지만 인수하지 않았다. (현재 구글 시가는 약 200조) 7위 나폴레옹은 겨울에 러시아를 침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6위 히틀러는 자기가 나폴레옹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겨울에 러시아 침공) 5위 독일은 영국보다 100년.. 2022. 7. 5.
125m 지하에 홀로 매몰된 남자 125M 지하에 홀로 갇힌 한 남자 367시간 45분 만에 구조된 구봉광산 매몰자 1967년 8월, 온 국민의 시선은 충남 청양군 구봉광산에 쏠렸다. 그곳에는 125m 지하에 홀로 갇힌 사람이 있었다. 1967년 8월 22일, 구봉광산에서 막장의 물을 퍼내는 일을 하고 있던 광부 양창선 씨 (당시 35세) 낮 12시 40분쯤 막장을 받치던 갱목이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지하 125m의 갱 안에 홀로 갇히게 된 양 씨 "갱도가 무너져 암흑천지가 됐고 추위 때문에 온몸이 떨렸다" 대피소로 몸을 피한 양 씨는 해병대에서 통신 업무를 했던 기억을 더듬어, 망가진 군용 전화기로 갱 밖의 사무소에 연락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막상 구출은 쉽지 않았다. '굴을 건드리기만 하면 헐어져 작업이 지지부진했기 때문' -.. 2022. 6. 29.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고통받는 직업 석유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공익광고를 할 정도로 힘든 직업이 있다고 합니다. 솔직히 빈곤으로 어려운 나라에 비하면 고통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려답고 생각됩니다. 사우디아라비아 2022년 인구조사 관련 공익광고라고 합니다. 요지는 인구조사원 오면 제발 음식 좀 주지말라는 내용입니다 ㅎㅎ 띵-동 인구 조사하더 왔... 아 일단 드루와 아니 그게... 우선 한입해 꼴깍 냠 또? (눈으로 욕함) 츄라이 츄라이 쬬릅 넋나간채로 아니~~ 내가~~ 변명하다가 끝남 2022. 6. 26.
말기 암 엄마의 마지막 소원 아이두명을 낳아 키우고있는 아이들의 엄마 결혼후 남편의 폭력 술을 마시면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리는 남편 남편의 폭력으로 결국 두 사람은 이혼을 하게됨 아들 두 명의 양육권은 아이엄마가 가져가고 남편은 아들 1명당 50만원 다해서 월 100만원의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 안타깝게도 아이들 엄마가 암 판정을 받게됨 그러나 집에는 돈이 없는 상황. 암치료비와 아이들 양육비를 벌기위해 항암치료중에도 일을 해야했음 전 남편은 이혼 후 4년이 넘도록 50만원 한번만 주고 그 후 연락을 끊어버림 그 동안 5천만원이 넘는 양육비를 안주고 버티던 전 남편 꾸준히 항암을 했으면 상태가 호전되었겠지만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병세가 악화되어 전이가 급속도로 진행됨 암이 폐에 전이되어서 이동식 산소통을 메고 남편집에 돈.. 2022. 6. 24.
광복 직후 조선에 남아있던 일본인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약 70만 명가량의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었고, 그중 상당수는 돌아가야 한다는 이유 자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1930년대에 이르면 이미 재조선 일본일 중 3할 이상이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일 2세였는데, 이들은 조선이 '독립'한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총독부는 이들을 위해 조선어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습니다. 강좌 정원은 순식간에 마감됐고, 일주일 만에 학급을 증설하는 등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미군정은 처음부터 재조선 일본인의 잔류를 용인할 생각이 없었고, 1945년 10월 3일, 재조선 일본인의 단계적 귀환을 지시했습니다. 직업이나 신분을 고려한 단계적 송환이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당장 생업전선에 뛰어들.. 2022. 6. 24.
재난 대비의 중요성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대지진, 규모 9.0 사망자 18,182명 실종자 2,172명 부상자 6,126명 동북부 이와테(岩手)현서도 대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8,000여 명의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와테현 북부 후다이(普代) 마을에선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 쓰나미가 덮친 일본 해안지역에서 직접적 사망자가 전혀 없는 유일한 지역 지진 발생 당일, 인구 3,000명의 이 마을에도 14m 높이의 쓰나미가 밀려들었다. 주민들을 살린것은, 높이 15.5m, 길이 155m의 방조제와 높이 15.5m, 길이 205m에 달하는 수문 방조제는 1967년, 수문은 84년 완공되었다. 이 마을은 1896년, 1933년에 두 차례 대형 쓰나미를 겪었고, 500여명의 사망자를 냈다. 촌장은 19.. 2022.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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