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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민족기업들

by Pronician 2015.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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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업중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던 기업들이 있다.

무너진 민족자본…GS·유한양행·동화약품만이 명맥 이어
 
일제시대 연구자들은 우리나라 민족자본의 모델로 백산상회를 꼽는다.
 
백산무역회사 설립 당시 참여한 주주 명단을 보면 경남 진주 출신의 지주 한 명이 눈에 띄는데,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의 조부이자, GS그룹의 뿌리인 허만정(1897~1952)이다.
 
 
 
 
1. GS 

 

 

*GS의 대표적인 계열사는 GS25 편의점, GS칼텍스(주유), GS홈쇼핑, GS건설이 있음.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할아버지 효주 허만정 선생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고,
 
허만정의 아버지 허준은 만주 독립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한 백산상회를
공동 설립했다.
 
 
백산상회에서 독립운동 전체자금의 60%를 지원했다고 한다.

 
허만정의 아버지 허준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뒤 인근 농부들에게 땅 200평씩을 공짜로 나눠 주기도했다.
 
일제 때 독립운동 자금을 댔던  허창수 GS 회장의 조부는 20대의 나이에 백산상회에 출자한 것에서 드러나듯 민족자본가의 길을 걸었다.
사재를 출연해 진주고·진주여고 설립을 도왔고, 중외일보 창립에도 관여했으며, 곤궁한 소작농과 주민에게는 쌀을 나눠 주기도 했다. 또 그는 삼성과 LG의 창업자금도 도왔다.

허준의 차남 허만정은 8명의 아들을 뒀는데 장남 허정구는 삼양통상 명예회장을, 차남 허학구는 새로닉스 회장을 지냈으며, 3남 허준구(GS그룹 창업주), 4남 허신구(GS리테일 명예회장), 5남 허완구(승산 회장), 6남 허승효(알토 회장), 7남 허승표(피플웍스 회장), 8남 허승조(GS리테일 부회장) 등이 모두 기업가로 현달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3남 허준구의 아들이다.
 
 
의로운 데 부를 아끼지 않았던 허씨 일가의 피는 지금의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이어 받아
크고 작은 기부활동에 소리 없이 참여해 2008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는 허 회장을 
'아시아를 대표하는 이타주의자 48중 한 사람으로 선정했다.
 
 
 

 

2.동화약품

 

 

*동화약품의 대표 제품으로는 까스활명수, 후시딘, 쌍화탕 등이 있음
 
-1920년대 동화약품 본사인 '서울연통부'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연락책으로 쓰임
 
-까스 활명수를 팔아 남긴 마진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음

 

-까스 활명수의 개발자인 민병호 선생의 아들 민강 사장은 독립운동에 연루돼
두 차례 옥고 끝에 숨을 거둠
 
 
궁중 선전관 민병호의 아들 민강(1883~1931)이 1897년 세운 동화약품은 한창 사업이 잘 되던 1920년대에 약을 팔아 남긴 돈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심지어 서울 중구 동화약품 본사는 상해 임시정부의 연락부였으며, 민강은 독립운동에 연루돼 두 번 옥고를 치른 끝에 48세의 젊은 나이에 숨졌다.
 
동화약품은 민강의 동지인 윤창식(1890~1963)이 인수했다. 정미업으로 사업에 뛰어든 윤창식은 조선인의 실력을 양성하자고 모인 조선산직장려계 결성을 주도했던 인물로, 항일운동단체인 신간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윤창식의 아들이자 동화약품 회장을 지낸 윤광열(1924~2010) 역시 1940년대 말 일제에 강제 징집됐으나 탈영해 광복군에 입대한 이력을 지녔다.
 
 
 
 
 

 

3.교보생명

 

 

*교보생명은 대표적으로 계열사인 교보문고가 있음.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를 포함한 아버지와 막내 고 신용희 전회장을 제외한
4형제분들이 모두 독립운동에 참여했음
 
-막내인 고 신용희 전회장은 고 신용호 창업자와 함께 교보생명을 설립했고,
 
-독립운동을 하던 이육사 시인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음
 
 
 
유한양행은 유일한의 동생 유명한(1908~1950)이 형과 달리 친일의 길을 걸었기때문에 제외했음.
유명한은 1938년 유한양행 이사, 1940년 부사장으로 일했고 태평양 전쟁을 즈음해 친일로 전향했다. 이름을 야나기하라 히로시로 창씨개명하고 국방헌금 1만원과 유한 애국기라는 이름의 비행기 1대 제작비 5만3000원까지 바쳤다. 이런 전력 탓에 유일한은 동생과 절연했으며, 유명한은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을 올렸다.
 
 
 
민족자본가의 길을 택한 이들은 독립을 위해 과감히 가산을 포기했다.
일제와 적당히 타협하거나 협력한 이들과는 정반대의 삶으로, 이는 탄압을 의미했다.
해방 후 지주 출신 자본가와 신흥 재벌이 득세한 것에 비해 민족자본가의 맥은 흥하지 못했다.
 
 
백산상회를 설립했던 안희제는 독립운동과 관련해 체포되어 고문 당하다 출옥한뒤 3시간만에 독립에 대한 유언을 남기고 사망. 해방 2년여를 앞두고 숨졌다. 지주였던 안희제 집안은 가세가 크게 기울었고,
동화약품이나 유한양행도 재계를 주름잡는 친일재벌들에 비하면 영세하기는 마찬가지다.
 

 

 
 
 
 
친일기업들이 아니라 이런 기업들이 잘되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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